2007/07/19 22:16

주간조선에 실린 기사. 나의 이야기

희귀질환 대학생과 미국 장군의 ‘아름다운 우정 3년’


연세대 신형진군, 2004년 러포트 사령관 도움으로 미군 특별기 이용해 위험 넘겨
이후 가족끼리 편지·선물 주고 받고 만나… 신군의 2학기 복학에 기쁨 나눠

▲ 강의실로 향하는 어머니와 아들.
지난 9월 11일 오후 2시50분, 서울 연세대 A공학관 옆 주차장. 미니밴이 주차하더니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휠체어가 내려진다. 조수석에 누워 있던 학생이 어머니에게 안겨 준비된 휠체어에 눕혀진다.

어머니는 적당한 높이로 베개를 받친다. 그리고는 대학생들이 흔히 사용하는 색을 등에 멘다. 만학(晩學)의 주부 같다. 어머니는 휠체어를 밀면서 경사로를 이용해 A공학관 현관으로 들어선다.

강의실은 지하 1층 006.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어머니는 지하층으로 내려간다. 006강의실에 도착한 시각은 2시58분. 이미 60여명의 학생은 수업을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가 능숙한 솜씨로 아들의 수업을 준비한다. 이때 대필 도우미 김지헌 학생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는다. 3시, 인터넷 프로그래밍 담당 이경호 교수가 들어와 출석을 부른다.

휠체어에 반쯤 누워 수업을 듣는 학생은 컴퓨터공학과 02학번 신형진(23)군. 어머니는 연세대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원옥씨. 신군은 근육병의 일종인 ‘척추성 근위축증(Spinal Muscular Atrophy:SMA)’ 환자. 근육병에는 루게릭, 듀센형, SMA가 있다. 이 중 루게릭 환자의 비율이 가장 높고 SMA가 가장 낮다.

2004년 9월 25일, 미국 방문 중 중태에 빠졌던 신군은 당시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과 함께 미군 특별수송기를 타고 서울공항으로 귀국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1년 뒤인 2005년 9월 추석을 앞두고 러포트 사령관은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는 신군의 병실을 찾았다.

▲ 수업을 듣고있는 신형진씨. 오른쪽은 대필 도우미 학생 김지현헌씨.
이랬던 신군이 2년간의 병원 치료를 끝내고 2006년 2학기에 복학했다. 그가 2학기에 듣는 과목은 인터넷프로그래밍 한 과목. 컨디션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2학기에는 한 과목만 신청했다. 수업은 월요일 2시간, 수요일 1시간.

담당 교수의 양해를 얻어 신군이 수업을 듣는 광경을 참관했다. 어떻게 누운 채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이 갖는 궁금증이다. 수업은 파워포인트를 이용해 영어로 진행된다. 미동도 할 수 없는 그는 스크린과 강의자료를 번갈아 가며 주시한다. 스크린의 화면이 바뀔 때마다 도우미 김지헌 학생은 마치 피아니스트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처럼 강의자료를 한 장씩 넘긴다. 1시간 동안 신군의 눈은 반짝거렸다. 그는 눈과 귀를 통해 수업 내용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어머니 이원옥씨는 아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A공학관 앞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이씨는 “형진이가 다시 대학에 복학했다는 사실이 꿈만 같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에요”라고 말한다.

신군은 매주 화·목·금요일에 영동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는다. 영동세브란스 재활의학과 직원들은 그가 상태가 호전되어 복학을 했다는 사실에 누구보다 기뻐한다. 이원옥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형진이 덕분에 연세대 캠퍼스의 공기를 마실 때마다 고마운 분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형진이를 키우면서 수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들에게 절을 해야 합니다. 영동세브란스 강성웅 박사님은 ‘형진이 때문에 많이 공부했다’고 합니다. 특히 러포트 장군 내외분한테 제가 어떻게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요? 아마 갚을 길이 없을 겁니다. 다른 사람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되겠죠.”

러포트 사령관은 지난 2월 한국 근무를 마치고 이임했다. 러포트 장군은 군에서 퇴역해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산다. 이씨는 남편(신현우 동양제철화학 부회장)과 함께 이임식을 포함해 러포트 부부를 다섯 번 만났다. 2005년 1월 연세대 총장 공관에서 있은 러포트 부부를 위한 만찬에도 유재건 열린우리당 의원 내외, 윤광웅 국방장관 내외와 함께 초대 받았다. 러포트 부부는 병상의 신군에게 2004년과 2005년 쾌유를 비는 추석 선물을 보내왔다.

어머니 이씨는 지난 봄 러포트 사령관의 부인 주디 여사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주디 러포트 여사는 이씨에게 답장을 했다. 주디 여사가 쓴 ‘친애하는 원옥(Dear Wonok)’으로 시작하는 6월 3일자 편지를 보자.

▲ 러포트 부인 주디 여사가 보낸 6월 3일자 편지.
“당신의 소식을 들을 수 있어 매우 기뻤어요. 정말 좋은 편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진에게 필요한 훌륭한 의사선생님을 만났다니 정말 반가운 일이군요. 지금 형진의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니 더 말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고요. 그런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형진이 연세대학병원으로 옮겨서 원옥씨 집과 더 가까워졌다는 것은 더욱 다행이네요. 집에서 병원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정도라니 더더욱 좋은 일이기도 하고요. 형진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형진이 다가올 9월에 학교를 다니려는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우리가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고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학교를 다시 간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매우 기쁘고 그가 자랑스럽네요.”

신군이 러포트 장군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알려진 대로 미군이 제공한 ‘KC-10 익스텐더’를 타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KC-10 익스텐더’는 미 국방부가 해외 주둔 미군 환자 수송을 위해 이용하는 특수기종. 의료진과 첨단 의료기기들을 갖추고 있어 ‘하늘의 병원’으로 불린다.

2004년 7월, 신군은 어머니와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뮤리에타시(市)에 사는 외할머니의 팔순 잔치에 참석했다. 그러나 음식을 먹은 게 체하면서 갑작스럽게 호흡 곤란 상태에 빠진다. 신군은 허겁지겁 란초 스프링스 메디컬센터 중환자실에 옮겨졌고 호흡을 살리기 위해 기관지 절개를 했다.

의료보험이 없는 신군의 하루 입원비는 5000달러. 갑부가 아니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어머니 이씨는 입원비 납부를 나중으로 미루면서 아들과 함께 2개월 반을 병원에서 지내게 된다.

“중환자실은 1층에 있었어요. 형진이를 한국으로 데려갈 방법이 없어 하루하루 막막해하곤 했죠. 매일 오후 해질녘이 되면 철새 떼가 군무를 하며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새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새들도 저녁이 되면 자기 집에 가는데…. 중환자인 형진이는 보통 여객기로는 10시간 이상 비행할 수 없는데 어떻게 집으로 데려가지….’ 낙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화여고 친구(김성수)가 떠올랐습니다. 그 친구 남편이 유재건 의원인데, 아무래도 발이 넓을 테니 한번 연락해보기로 했죠. 미군은 주한미군을 수송하기 위해 비행기를 한국에까지 보낸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은 게 생각났습니다.” 

마침 유재건 의원은 국회 국방위원장이었다.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유재건 의원은 마침 청문회 출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러포트 사령관은 다시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허락을 맡아 한국 민간인을 위해 미군환자 전용 수송기인 ‘KC-10 익스텐더’를 띄우기로 결정한다.

이씨는 병원을 나서면서 병원비로 단돈 10달러도 내지 않았다. 신군과 같은 희귀질환 환자를 위해 마련해놓은 특별기금이 대신 병원비를 납부한 것이다.(이씨는 한국에 돌아온 뒤 남편과 상의해 신세를 진 기금에 3만달러를 기부했다)

‘KC-10 익스텐더’ 수송기에는 러포트 사령관, 이원옥·신형진 모자, 미 공군 중환자 보호팀(Critical Care Air Transport Team) 요원 등 총 10여명이 탑승했다. 이씨는 ‘KC-10 익스텐더’ 안에서 있었던 일을 이렇게 회상한다.


▲ 2005년 9월 병실을 찾은 러포트 사령관 내외.(좌) 2004년 9월 25일 서울공항에 내린 신형진씨를 러포트 사령관이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은 유재건 의원과 이원복씨.(우)

“별 4개인 러포트 대장은 13시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조종석 옆에 앉아 1시간마다 한 번씩 형진이의 상태를 살피곤 했습니다. 중환자 보호팀의 제프 루더포드 상사는 형진이와 친해졌고 헤어질 때는 형진이에게 어깨에 부착하는 부대 휘장을 선물했지요.”

▲ 신형진씨의 특별수송작전을 맡은 중환자 보호팀 휘장.
신형진군은 2004년 9월 서울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삼성의료원으로 후송됐다. 그 해 12월에 퇴원했다가 상태가 나빠져 다시 1월 25일 삼성의료원에 입원했다. 신군은 그 후 줄곧 삼성의료원에서 치료를 받다 지난 3월 6일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간다. 근육병 환자의 호흡재활을 전공한 강성웅 박사가 영동세브란스병원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강 박사는 신군의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았고 재활치료를 시작한 지 10일 만에 인공호흡기를 떼고 자가(自家)호흡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음과 모음을 적어놓은 글자판을 만들어 아들과 대화를 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목소리만 나오면 더 이상 바람이 없겠다”고 말하곤 했다.

신군의 목소리가 살아난 것은 8월 2일. 물론 건강한 사람의 목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약하다. 어머니만이 입술 움직임만으로 발음을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다.
이원옥씨는 지난 7월, 환갑을 맞은 러포트 장군의 부인 주디 여사에게 생일 축하카드와 작은 선물을 보냈다. 주디 여사에게서 답장이 왔다. 주디 여사는 7월 25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정다운 생일축하 메시지와 함께 3개의 아름다운 보석 핀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사려깊음에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친절하게도 제 생일까지 기억해주셔서 더욱 감사하네요. 저를 그렇게 각별하게 생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남편과 저는 모두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과 가족들도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 집에서 책을 읽고 있는 신형진씨.
주디 여사는 신군의 안부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는 형진이 매일 몸이 나아지고 있다는 말에 기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빨리 쾌유해서 9월에 학교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고 형진에게 말해주세요. 형진에 대한 우리의 사랑도 전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신군은 집에 있을 때는 책을 읽거나 눈동자마우스를 이용해 컴퓨터를 한다. 싸이월드에 미니홈피(www.cyworld.com /drshin83)도 갖고 있다. 서울 개포동 자택을 찾아갔을 때 신군은 ‘실용주의 프로그래머’라는 전공서의 367쪽을 읽고 있었다. 자택 거실은 마치 중환자실에서나 볼 수 있는 장비로 가득하다. 월드컵과 대선이 있던 2002년에 대학생이 된 신군에게 미국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그는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힘들게 말한다. “그 전에는 (미국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이 있었어요. 여중생들이 죽었을 때 그랬죠. 그런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좋게 생각하게 되었죠.”

러포트 장군 부부는 현재 고향에 새 집을 짓고 있다. 러포트 부부는 집이 완공되면 형진군을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조성관 주간조선 차장대우 mapl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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